시인의 시 <잠꼬대>에서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사람의 운명이란뜻밖의 곳에서전혀 뜻밖의 사고로뒤틀리거나 길을 잃기도 하는 것이라서"우리는 어쩌면 하멜처럼 살아가는 존재일 수 있습니다.하멜처럼 배를 타다 표류하여 도착한 병영와 같은 이국 땅에 살아가지 않더라도,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익숙한 장소에서 살아가지만심정적으로 하멜처럼 낯선 곳에서 살아가는 존재일 수 있습니다.
시작시인선 196권. 2002년 시와시학 으로 등단한 신덕룡 시인의 신작 시집이다.
삼 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은 그간의 내면적 정황을 지시하고, 나아가 그의 시세계와 삶의 향방마저도 예고한다.
신덕룡의 시집의 모든 시편은 ‘하멜서신’이라는 명명을 부제로 달고 있다. 개별 시편에 동일한 부제를 나중에 단 경우라기보다 일정 기간을 고스란히 특정한 인물의 정념으로 산 내면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낯선 땅에 표류하여 청·장년기를 보낸 하멜에 자신을 투사한 60편의 시는 서정시의 핵심 전통인 단일 화자를 한 권의 시집으로 확대한 사례이다.
낯선 조선 땅에서 13년을 보낸 하멜의 서사와 시선 위에 구성된 하멜서신 은 이방인으로서의 삶, 내동댕이쳐진 생의 폭력성을 하멜의 마스크를 통해 효과적으로 형상화한다. 이 시집에 담긴 생에 대한 정념의 형상은 이역의 땅에서 장년기를 보낸 시인의 개인적 이력과 포개지고, 좀 더 넓게는 생의 보편적 비극성에 대한 수일한 비유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신덕룡 시의 중요한 특징인 소리와 적요에 대한 감각은 그의 시가 지닌 경청이나 내밀함의 자질을 드러내는 것이지만 이는 궁극적으로 자신의 깊은 내면성을 부조해내는 데 기여한다. 그렇기 때문에 ‘하멜’을 시집 전체의 내면적 표상으로 삼은 것은, 신덕룡의 시세계, 그 고요와 평정과 식물적/ 생태적 사유의 내부에 드리워진 이 정념들과 마주하려는 시인의 의지의 소산이다. 이방인으로서의 삶, 내던져진 운명의 생, 그 어둠 속에서, 길의 부재 속에서 찾아야 할 길이 있다고 믿으면서 더듬더듬 찾아낸 세계, 그것이야말로 하멜서신 이 궁극적으로 천명하고자 하는 내용일 것이다.
시인의 말
제1부
그림자나무 13
영암을 지나며 14
풋잠에 들다 15
녹비鹿皮 16
새 18
들국화 19
맨발의 은행잎들 20
‘꼬다’라는 말 22
담을 치다 23
민달팽이, 혹은 좌표들 24
잠꼬대 26
아무 날 아무 시 27
곡신谷神에 대하여 28
창밖의 귀 30
꽃과 새 32
제2부
수인사修仁寺 35
잡초를 뽑다 36
옻나무에 스치다 37
상수리나무 38
홍시 40
겨울의 묵시록 42
남씨南氏로 살아가기 1 44
남씨南氏로 살아가기 2 46
나선의 방향 48
고추에 대하여 49
탈관脫棺 50
막걸리 51
매일매일 52
등거리 54
제3부
등뼈 57
추석 무렵 58
뿔, 없어도 되는 59
잃어버리다 60
마량포구 61
등잔불의 역사 62
밀서를 읽는 시간 64
전생에 나는 66
눈 밖에 나다 68
비질을 하다 70
맨발 71
보리개떡 72
다락방 74
낫과 호미 76
아무개들 77
제4부
틈 81
절반의 기억들 82
묘책 83
영암 월출산 84
흩날리는 벚꽃들 86
초분草墳 앞에서 88
한가하다는 것 90
귀를 막다 91
조선의 땡삐들 92
강진 아리랑 93
오월 94
구름의 장례식 95
병영을 떠나며 96
금강천 98
해설: 김문주 ― 자유를 향한 정념의 서사, 고요한 뿔의 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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